커뮤니티

조회 수 135 추천 0 댓글 6
그 날은 아침부터 더웠다.

자기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소년의 귀에, 어머니의 질책이 들려왔다.

[얘, 게임만 하지 말고 정원 좀 정리하렴. 엄마랑 약속했잖니?]



소년은 생일에 가지고 싶은 게임을 사는 대신, 여름방학 때 매일 아침 정원의 잡초를 뽑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TV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시원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조금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의 소년이었지만, 단념한 것 같다.



게임기의 전원을 끄고 대충 정리한 후 종종걸음 쳐서 아래 층으로 내려간다.

손바닥만하다는 말이 어울릴만큼 작은 정원이었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인 소년에게 정원 정리는 중노동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다 한여름의 타는듯한 더위가 내려쪼인다.



10분도 되지 않아 소년은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된다.

사방 1m도 정리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앓는 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정원 한 구석의 은행나무로 다가간다.

푸르디 푸르게 잎이 우거진, 이 정원에서 유일하게 그늘이 있는 곳이다.



나무 밑에 앉아서 소년은 숨을 돌린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지만 그래도 햇빛을 그대로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살 것 같다고 느끼는 와중에, 소년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조금 튀어 나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룩하게, 마치 무엇인가 묻혀 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소년은 심심한 나머지 그 곳을 파 보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것] 이 땅 속에서 나타났다.



기묘하리만치 흰, 그렇지만 얼룩덜룩 보라색으로 변색된 가냘픈 팔.

그 손 끝의 약지에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소년은 그 반지를 알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소년의 머릿 속은 완전히 어지러워진다.

그렇다면 아까 자신에게 정원을 정리하라고 시켰던 그 [목소리의 주인] 은 도대체...?

[엄마...]





중얼대려는 도중, 어느새 툇마루에서 나오고 있던 [어머니] 와 눈이 마주쳤다.

수직에 가깝게 위로 쭉 찢어진 눈, 귀 부근까지 크게 웃는 것처럼 찢어 갈라진 입.

이상한 얼굴의 [어머니] 였다.



그 날도 아침부터 더웠다.

소년은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오늘도 땀투성이가 되어 가며 풀 뽑기에 열심이다.

그 덕인지 정원은 이전보다 훨씬 산뜻해져서, 훨씬 보기 좋게 변해 있다.



은행나무는 오늘도 나무 그늘을 만들고, 소년이 바람을 쐬러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밑동에는, 수북하게 쌓인 흙더미가 둘 놓여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최근변경 추천
공지 AV관련 17금 저질 잡담 인사 글은 강력 계정 제재합니다 피카부 2022.01.22 0/0
18541 논란이 된 문제입니다. 풀어보시죠 47 뇌운 2017.09.27 0/0
18540 아내 잔소리가 너무 너무 싫었나봐 31 amon 2017.09.16 0/0
18539 기어가기는 이렇게 하는 거 야. 8 멜트다운 2017.09.15 0/0
18538 삼수생의 조언 아아아아아 33 아이구야 2017.09.28 0/0
18537 유럽 픽시 대회에서 나온 끝판왕 다운힐 기술 102 천연위성 2017.09.22 0/0
18536 간만에 다시보는 명장면 53 Lunen 2017.09.21 0/0
18535 참으로 씁씁한 슬픈사진 23 눈먼바람 2017.09.17 0/0
18534 입으면 헌팅이 쇄도하는 대학생 코디 81 claw 2017.09.15 0/0
18533 조별과제의 먹이사슬 잔혹사 17 아니꼬운곰 2017.09.18 0/0
18532 어느 음식점 후기에 대한 사장님의 친절한 댓글 12 아둔토리다스 2017.09.18 0/0
18531 로또1등 인증, 당첨썰 [디씨펌] 28 눈먼바람 2017.09.21 0/0
18530 누군가를 향한 거침없는 도약 3 공백없는닉 2017.09.15 0/0
18529 아이팟각인 부재시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8 돈을주시죠 2017.10.12 0/0
18528 관계시 귀에 대고 속삭일 말로 올바른 것은? 52 claw 2017.09.15 0/-1
18527 여름에 더위를 이기는 방법 15 갠253 2017.09.21 0/0
18526 일본책에서 나온 한국인 고문하는 방법 29 yangi 2017.09.15 0/0
18525 한국인 대다수가 틀린것 같은 문제 11 yangi 2017.09.21 0/0
18524 약육강식의 잔인한 세계 18 찬소리아빠 2017.09.18 0/0
18523 엄마 잠깐 십분만 더하께요 21 루씨아빠 2017.09.18 0/0
18522 앞자리 아저씨의 수상한 냄새 11 회색향 2017.09.16 0/0
Board Pagination Prev 1 ... 160616071608160916101611161216131614 ... 2537 Next
/ 2537

전체 최신 인기글

전체 주간 인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