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1592년) 4월, 왜군의 침략으로
한반도 전역이 불길에 휩싸인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같은 해 10월 6일 진주성 앞에 몰려온
왜군의 수는 30,000명이 넘는 인원이었고,
성을 지키는 조선군의 수는 3,80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11일까지 5일 동안
총 10회의 전투에서 완승하였습니다.
조선군의 사망자는 800명 정도였지만
10,000명의 넘는 왜군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 전투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입니다.
그러나 11일까지 총 10회의 전투에 승리하였습니다.
조선군의 사망자는 800명 정도였지만
10,000명의 넘는 왜군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 전투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입니다.
8대 1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승리를 거둔
진주대첩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하는 전투가 있습니다.
다음 해 1593년 6월, 진주성 앞에 93,000명의
왜군이 몰려온 2차 진주성 전투입니다.
이때 진주성을 지킨 조선군은 관군 3,000명과
의병 2,800명으로, 17대 1의 싸움이었습니다.
특히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목사 김시민 이끄는
관군에게 크게 참패했던 기억이 있던 왜군은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진주로
집결시켰습니다.
명군은 진주성을 포기했다.
지원군은 오지 않는다.
한 줌의 병력으로 어디 감히 항거하느냐!
- 왜군 -
우리나라는 죽을힘을 다해 싸울 뿐이다.
너희를 남김없이 무찌를 것이다.
- 조선군 -
하루에도 수차례씩 치열한 교전이 오가고
8박 9일 동안 24회에 걸친 전투는
조선군이 모두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9일째 되던 날 폭우에 동문 성벽이 무너지면서,
그 틈으로 밀려온 왜군에 의해 끝내 진주성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조선군과 6만 명의 수많은 진주 백성이 학살당했습니다.
이렇게 패배한 전투였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배는 그냥 패배가 아닙니다.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조선군은 1차 전투보다도
더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군 38,000명을 사살했습니다.
주력군의 1/3을 잃은 왜군은 결국 부산 이남으로
퇴각해야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와 더불어
임진왜란의 마침표를 찍은 이 전투는
사실상 패배한 전투가 아닙니다.
2차 진주성 전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승리의 역사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지키고 존재하기까지
수많은 목숨이 이름도 없이 희생당했습니다.
무참하게 쓰러져 가는 와중에 그분들이 마지막까지
품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전투에 지고 적의 칼에 쓰러졌지만
그분들은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하고 있고,
그분이 지키고 물려준 이 나라와
우리의 후손들을 우리가 아름답게 지킬 수 있다면
그분들은 영원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戰死易(전사이) 假道難(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 송상현 장군 –
출처 : 따뜻한하루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