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당시 등장은 전국을 놀라게 했다.
1994년 데뷔를 하고
1995년 3월달 ' 마지막기도 ' 라는곡으로 앨범을 내었는데
당시 가요계와 방송에서는 여자 음정보다 높고 3옥타브를 훌쩍넘는 4옥타브를 가까이 내는?
초 고음역대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한국에 보기 드문 성량 엄청난 록커 라는식의 타이틀로 김경호를 가요계시장에 입성시켰다.
하지만, 큰 반응을 얻지못하고 김경호는 잊혀져 가는듯 했으나 꾸준히 김경호는 라이브 1관 2관 에 왔다갔다 하면서?
토요일 일요일 마다 공연을 했었다. 신문기사에도 몇번 나오면서 록 매니아층들은 김경호를 사랑했다.
김경호는 당시 80~90년대 유명했던 록 그룹 파이어하우스 & 스키드로우 & 스트라이퍼 & 져니 & 퀸 의 노래를 많이 연습했는데
무대매너의 영향은 스키드로우 창법은 스키드로우 스트라이퍼의 영향을 많이 받은듯 했다.
그의 목소리와 성량 발성 기술 모든것은 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어느 부분은 더 뛰어나기도 했다.
김경호는 잘랏던 머리를 97년 까지 기르기 시작하고 1997년에 '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 이라는 곡을 타이틀로?
앨범을 내고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했다.?
출연 전 PD는 김경호에게 요구했다.?
" 시끄럽기만 한데 사람들이 잘 아는 비틀즈의 렛잇비를 부르는게 어떤가? "
이런식으로 제안하자?
" 나는 내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 "
김경호는 자기의 의사를 정확히 밝혔다.
이 사람은 과거나 현재나 전혀 돈도 무엇도 아닌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것 그것만이 자신의 목표였다.
처음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대화를 한뒤, 큰 호응을 얻으며 Youth gone wild 를 불렀다.
가끔 발음 지적하는 영상 댓글이나 게시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현재 세대는 유치원때 부터 영어를 가르칠만큼?
영어교육이 많이 발달 되어있지만, 80년도에는 가르치는사람들도 발음이 좋지 않았다. 그냥 나오는 노래 발음을 적고
그 들리는대로 외우는게 전부였다. 그것을 바라보았을때 김경호는 좋은 편이다.
그렇게 프로포즈를 마무리하고 다음날 김경호는 소속사 회사에서 엄청난 대우를 받고 팬들에게 그 날 이후로 전국적으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겸손함 그의 귀여움 그의 록스피릿 그가 원하는 록의 대중화를 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고 지금도 그렇다.
돈도 잃고 칼같은 고음이라는 무기를 잃었지만, 자신의 남은 장점들을 찾고 지금도 그는 록을 위해 힘차게 달리고있다.
어릴 때 콘서트를 못가본게 후회되네요